(2017.10.5. 제주도-김만덕전시관)
수요일 오전
"오늘은 무슨 과목이 들었나?"기대하며 계획안 앞으로 달려가던 율하~
계획안을 보더니 실망한 목소리 들려오더군요.
"뭐야~국어 사회 영어 수학 다 재미없는 과목만 들었어"
'싫은 과목이 그렇게 많으면 학교를 그만 두셔야지요. 그런 재미없는 학교를 왜~가십니까?'라고 쏘아주려다
율하는 들어서 아프고 나는 조금있다가 정신들면 후회하면서 아플 것 같아서 꾹 참았지요.
재미없는 과목만 들었다면서도, 밥 한 공기를 입에 가득 몰아 넣어 꿀꺽 삼키더니, 양치 쓰윽~ 물조금 묻히고
쏜살같이 학교에 가네요.
벌침 같이 아픈 잔소리를 쏘아주려다 다시 꾹 참았지요.
아빠~
이렇게 잘 참는 제가 참 대견스럽지 않으세요.
전 정말 제 자신이 너무나 대견스러워요.
저 잘했지요.
아빠 아들 아픈말로 쏘지 않아서요.
시계를 올려다보니 8시20분
5분이면 가는 학교를 일찍 가는 이유는
일찍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청소 시켜 주시기 때문이랍니다.
참~이상한 하나님 아빠 아들
1~2학년 때는 일찍온 아이에게 선생님이 분리 수거 시켜준다고 일찍 가더니
3학년 2학기 때는 복도 청소 시켜주실까봐 일찍가네요.
똑같은 청소인데 엄마가 시키면 노동
선생님이 시키시면 관심과 사랑으로 생각하니 이상한 아이 맞지요?
오늘 수학 지필평가도 보는데...
선생님 말씀 잘 들었으면 어느정도 맞추긴 하겠지요.
학교 성적에서 약간 관심을 비끼니 세상이 참~다르네요.ㅎㅎ
수요일 오후
율민이와 주하가 피아노학원 가고 율하는 자기방에서 로봇을 열심히 만들고 있더라구요.
살며시 율하 옆에 앉으며 아침에 쏘아주려고 했던 말을 예쁘게 포장해서 물었지요.
"율하야 오늘 아침에 다 재미없는 과목만 있다고 불평했잖아요. 불평한 만큼 나쁜 일이 많이 생겼어요?"
율하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더군요
"아니요"
"그렇지요. 생각한 만큼 나쁘지 않았지요"
"네"
"율하야~그럼 미리 가보지도 않고 불평할 필요 없겠다. 그치요~ 때론 염려하고 불평한 것처럼 그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살아보니까 우리가 염려한 것 만큼 나쁘지는 않더라구요"
아빠~
저 진짜 교양있는 엄마 같지 않으세요. 호호호
제가 요즘 율하를 보면서 율하와 나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나가고 있어요.
전 학교 다니면서 청소하는 것이 한번도 기쁜적이 없었어요.
청소는 벌이었거든요.
그래서 율하가 우유곽 분리수거를 했다고 말할 때도, 복도청소를 했다고 말할 때도,율하의 얼굴 표정은 볼 생각도 안 하고 내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어요.
'학교에 적응을 못하나? 율하 학교에서 말썽피우나'
선생님을 도와드렸다며 행복해하는 율하의 얼굴을 놓쳐버린거예요.
그리고 3학년이 된 율하에게 엄마 입김을 불었지요.
"율하야 생태체험활동 재미있겠다. 율하야 어짜피 첼로 배우니 오케스트라활동 할까?"
율하가 ok해서 율하도 저만큼 좋아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요 아빠~
율하는 생태체험활동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좋아하긴했는데 더 좋아하는 것이 있었던 거예요.
학교에 일찍 간 날 선생님이 복도청소를 시켜주셨는데 그것이 행복했던 율하는 밝은 얼굴로 돌아와서 저에게 자랑을 하더라구요.
그 순간 율하의 얼굴에서 내가 놓쳤던 것을 보게 되었어요.
섬김이 기쁨인 아이....
그래서 내 입김으로 씌워 놓은 올가미 같은 일정을 하나 하나 제거해주었어요.
생태체험활동 아웃
오케스트라활동 아웃
아침마다 주스갈아 섬겨주고, 밥 없으면 밥 해서 섬겨주고, 엄마 바쁘면 밥 차려서 섬겨주고, 동생 잘 섬겨주고, 설거지가 쌓여있으면 밥먹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기는 해도 설거지를 해서 섬겨주고.....
섬김으로 하나님 아빠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율하인데 그 정체성을 제가 흔들고 있었네요.
죄송해요.
월요일 아침
오늘도 학교가는 율하의 얼굴을 보았어요.
율하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모습으로 학교에 가는데 '혹시나 선생님이 청소 시켜주실까~'란 기대를 품은 율하의 얼굴이 홍대영 과학관에서 보았던 달처럼 밝네요.
(제주도-김만덕 전시관)